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중국사/세금 제도 (문단 편집) === [[맹자]]의 주장 === ||[[파일:external/korean.cri.cn/081b4f8cc1755652b31bba39.jpg|width=250]] || || '''[[맹자]]''' || 맹자 등문공 상(滕文公 上)에 관련 내용이 있다. 등문공이 나라를 다스리는 방법에 대해 묻자 맹자가 대답하면서 이전의 세금 제도를 언급한다. >하나라는 세대당 전지 50묘(무)를 주고 공법(貢法)을 행하였고, 은(또는 상)나라는 세대당 70묘를 주고 조법(助法)을 행하였으며, 주(周)나라는 세대당 100묘를 주고 철법(徹法)을 행하였는데, 실제로는 모두 10분의 1의 세금을 거둔 것입니다. 철(徹)은 힘을 합해 함께 일하고 똑같이 나눈다는 뜻이고, 조(助)는 힘을 빌려 공전(公田)을 경작한다는 뜻입니다. 용자(龍子)[* 여기서 자(子)는 공자나 맹자처럼 존칭의 뜻으로 붙인 글자일 뿐 이름이 아니다. 하지만 용자가 구체적으로 누구인지는 알 수 없다. 존재 자체가 허구일 가능성도 높다.]가 말하기를 > >"토지를 다스리는 데는 조법(助法)보다 좋은 것이 없고, 공법(貢法)보다 나쁜 것이 없다. 공(貢)이란 수년 간의 소출의 평균을 계산하여 일정액의 세금을 내게 하는 것인데, 이렇게 할 경우, 풍년에는 곡식이 넘쳐나서 많이 거두어도 학정이 되지 않는데 적게 취하게 되고, 흉년에는 토지에 거름을 내기에도 부족한데 반드시 일정액을 꼭 채워 세금을 취해 가는 일이 벌어진다. 백성의 부모가 되어서, 백성으로 하여금 원망스러운 눈으로 일년 내내 부지런히 노동해도 제 부모를 봉양할 수 없게 만들고, 거기다 빚까지 내서 일정액의 세금을 채워 내게 함으로써 늙은이와 어린아이들의 시체가 산골짜기에 나뒹굴게 한다면, 어떻게 백성의 부모될 자격이 있겠는가."[* 반대로 일정비율만큼 거두는 것도 사실 단점이 있다. 소득비율로 거두는 만큼 많이 거두는 사람에게는 많이 거두고 적게 거두는 사람에게는 적게 거두는 만큼 얼핏 보면 좋게만 보이고 실제로 현재 세금 거두는 기준도 이 기준이다. 문제는 전근대에만 해도 이 소득기준을 정확히 판단할 길이 없었다. 행정력이 지금보다 약하고 교통도 지금보다 안 좋아 아무리 정부에서 소득기준을 공정하게 매길려고 해도 부자들은 뇌물 찔러주면 끝, 그리고 전근대에는 농업이 주 산업인 만큼 풍년이나 흉년이나에 따라서 국가에 소속된 사람들 대다수의 소득이 갈린다. 문제는 풍년에는 당연히 앞에서 말했듯 많은 세금을 거둬도 별 문제가 안 되는데 흉년에는 세금을 적게 거둬야 하지만 국가도 쓸 양이 있는데 흉년으로 인해 감소한 만큼 세금도 감소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 물론 그 방법으로 [[매관매직|계급이나 벼슬을 판매하는 일이 있었다.]] 하지만 이것은 대게 임시방편적이었던데다가 어김없이 [[계급 인플레이션|부작용이 나타났다.]] 즉 일정세액을 거두나 일정비율을 거두나 둘 다 장단점이 있었다. 물론 일정비율을 거두는게 더 맞았기에 예나 지금이나 그걸 기준으로 삼거나 삼으려고 하지만...] > >하였습니다. 벼슬하는 자에게 대대로 녹(祿)을 주는 세록(世祿)은 등 나라가 본래부터 시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위에 언급한 시경의 내용을 말하며, '조법에만 공전이 있는데 공전 이야기가 나옴은 주나라도 공전을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이야기를 참조로 하면 하나라, 상나라, 주나라 시대의 토지 제도를 알 수 있지만 확증할 수는 없다. 맹자 본인은 확실하게 정전법을 주장했기 때문에, 이 과정에서 이전의 정전제를 이상화했을 가능성이 있다. 일단 맹자가 주장하는 내용을 이러하였다. * 시골에선 9분의 1의 조법을 행한다. * 성 안에서는 10분의 1의 조세를 걷는다. * 경(卿: 벼슬) 이하는 규전(圭田)[* 경(卿)•대부(大夫)•사(士)에게 주던 토지] 50전을 준다. * 농가의 기타 노동자에게는 25무(묘)를 준다. * 사방 1리마다 우물 정자 모양의 정전을 두어 1정 900묘 중 100묘는 공동 경작하여 그 생산량을 세금으로 내고, 나머지 800묘는 한 가구가 100묘씩 경작하여 먹고 산다. 이 정전법이 실제로 행해졌는지, 맹자가 이상화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영향력은 확실했다. 이후로 정전법은 이상향이 되어 후대에 막대한 영향력을 끼쳤던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